언론보도22-12-27

제3의 눈과 손을 선사한 ‘신경조절주사치료’


 

글·오인영 응급의학과 전문의

7년전 나는 응급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던 중 아주 신선한 충격을 주는 치료를 접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신경조절주사치료’다. 응급실에서 수액치료와 약물치료에 의존하여 통증을 조절하던 나는 ‘신경조절주사’로 통증뿐만 아니라 인간의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자율신경기능 이상의 증상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에 의구심과 놀라움의 두 가지 감정을 가졌었다.

대한응급의학회에는 임상술기연구회가 있고 나는 그 연구회의 정회원이다. 임상술기연구회는 상처처치, 심전도분석, 통계, 부목고정, 중환자 술기 등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응급의학과 의사들의 연구모임이다. 이 연구회에 7년전에 또 하나의 분과인 ‘신경조절주사요법분과’가 만들어졌고 나는 어느새 그 치료를 연구하고 가르치는 강사가 되었다. 전부터 연구회의 다른 분과(상처처치분과, 심전도 분과)에서 강사 활동을 하던 터라 또 다른 학문을 배운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던 것 같다.

강사가 된 후로 2000페이지에 달하는 통증교과서와 해부학책을 매일 뒤져 보게 되면서 인체의 근육과 신경, 표면해부학과 통증 발생 기전에 대한 통찰을 점차 갖추게 되었다. 작은 주사바늘과 4㏄ 정도 되는 포도당 주사액이 난치성 증상들을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실로 기적처럼 느껴졌다.

7년전 아직 걸음마 수준이었던 나에게 운명적인 환자가 내원하였다. 환자는 30대 중반의 남성으로 자율신경실조증 증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큰 병원을 전전하였지만 원인과 치료 방법을 모른 채 고생하고 있었다. 환자는 늘 춥고 떨리고, 식은땀이 났다가 더웠다가, 식사를 잘 못하고 먹으면 구토를 하기 일쑤였으며, 온 몸이 아파서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휠체어로 다녔다. 신변을 비관하여 자해소동을 벌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첫 만남이 있던 날, 환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휠체어에 의지한 채 부인에 이끌려 응급실로 들어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는 그간 이런 식으로 이 응급실과 저 응급실로 밤마다 진통제를 맞으러 다닌다고 했다. 나는 당시 자신은 없었지만 환자의 고통이 너무 안타까워 신경조절주사로 치료를 해보겠다고 했다. 척추기립근인 다열근의 병적수축으로 인한 교감신경항진과 부신기능저하증이 원인일 수 있다고 가정하고 척추주변으로 10곳 이상의 치료점에 주사를 놓았다.

2일 후 응급실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였고 환자는 두 번째 만남 때 허리를 곧게 펴고 내게로 씩씩하게 걸어왔다. 처음에는 누구인지 몰랐다. 이름을 보고나서야 그 환자인줄 알았다. 이후 나는 그 환자의 아주 작은 문제들까지 치료하기 위해서 36번 더 응급실에 오게 하였고 37번째 치료 후 더 이상 치료할 게 없어 치료종료를 선언하였다. 치료자와 환자의 믿음과 인내가 있어야 치료가 된다는 사실을 내게 강하게 각인시켜준 경험이었다.

환자는 내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지금도 근황을 종종 전해준다. 그 자율신경실조증 환자는 내가 신경조절주사를 배워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강한 동기부여를 해준 환자이자 스승이라고 생각한다.

2022년 7월에는 서수원의 한 종합병원 응급센터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다. 화홍병원 응급센터는 넉넉한 공간과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응급진료업무와 신경조절주사치료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한 번은 아침에 출근하여 혈압이 떨어지는 패혈성 쇼크 환자를 치료하고 있는데 외래에서 변비가 있는 70대 남자 환자를 내려보내니 관장치료를 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자주 접하는 변비환자이겠거니 생각하고 관장 오더를 내고 다른 환자의 치료에 매진하고 있는데 환자가 자꾸 아프다고 소리쳤다. 환자는 “나는 아픈데 당신들은 왜 치료를 안해주냐!”고 소리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하고 병력과 검사를 보니 일주일 전부터 우측옆구리, 아랫배, 사타구니 쪽이 아파서 진통제를 복용하고 타병원을 다니다가 호전이 없어서 우리병원 외래로 온 것이다. 외래에서 주요검사는 내원 당일에 모두 시행하였고 복부 CT, 혈액검사 상에는 특이할 만한 이상소견이 없었다. 이상하다 생각하여 환자를 진찰해보니 흉추요추연결부의 기립근육이 과도하게 긴장을 하면서 등과 그 아래로 내려오는 피부감각신경을 압박하여 허리와 옆구리, 아랫배에 통증이 발생하였던 것이다. 해부학적 지식, 통증에 대한 신경조절주사요법적인 접근이 없었다면 원인규명과 치료가 불가능 했을 것이다.

환자에게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환자는 버스를 탈 때와 걸을 때에도 창자가 찢어지는 통증이 있었다고 하였는데 진찰을 해보니 내장의 이상과는 무관하게 척추기립근이 피부감각신경을 압박하여 발생하는 통증이었고 환자가 통증의 착각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일주일간 아무리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없는 그 환자의 통증은 원인이 되는 기립근에 포도당 주사액 4㏄씩 두 곳을 맞고 즉시 사라졌다.

이후 환자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 진료책상 앞으로 다가왔고 “나한테 금덩이라도 있으면 주고싶다. 선생님은 이백년은 살아야 한다”는 인사말을 남기고 퇴원하였다.

신경조절주사는 인간이 겪는 난치성 통증중의 하나인 대상포진에도 훌륭한 효과를 보인다. 대상포진은 과거에 수두를 앓았던 환자가 회복된 후에 수두바이러스가 척추신경절에 잠복하였다가 환자의 면역이 떨어지면 재활성화되어 생기는 질환이다. 이 후 바이러스는 그 신경절에서 나오는 신경이 지배하는 피부에 물집을 만들고 통증을 일으키게 된다.

치료제로는 항바이러스제와 진통제가 있지만 교과서적인 치료를 하여도 많은 환자들이 대상포진성 통증으로 고통을 겪게 된다. 나는 신경조절주사치료를 하기 시작한 이후로 이미 수많은 대상포진 환자들을 응급실에서 성공적으로 치료한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 50대 중반의 남자가 등이 아프다며 응급실에 내원하였다. 환자는 이미 다른 병원에서 4일 전에 대상포진을 진단받고 항바이러스제와 진통제를 복합처방 받아 복용 중이었다. 문제는 통증인데 마약성 진통제까지 복용하고 있으나 통증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대상포진 통증은 척추신경절로부터 나오는 신경이 척추다열근(기립근육의 일종)을 수축시키고 수축된 다열근이 피부로 이어지는 감각신경을 자극하면서 ‘피부가 타는 듯한, 스치기만해도 아픈, 바람만 불어도 아픈’ 양상의 통증을 발생시킨다. 이는 신경통의 일종이며 타이레놀, 비스테로이드계성 진통제, 마약성 진통제에도 잘 반응을 하지 않으며 신경성통증을 조절하는 몇 가지 약제에 어느정도 반응을 한다. 하지만 신경성 진통제를 복용한 많은 대상포진 환자들이 어지럼증, 구역, 변비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며 응급실에 오는 경우도 많다.

대상포진의 신경조절주사치료는 간단하다. 대상포진이 발생한 피부를 신경해부학적으로 역추적하여 원인이 되는 신경절을 찾고 해당 다열근에 약 4㏄ 정도의 포도당 주사액을 주사하여 다열근의 긴장을 풀어준다. 그러면 다열근의 압박을 받는 감각신경의 자극이 줄어들어 통증이 조절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환자들은 그 주사로 즉시 놀랄만한 효과를 보게 되고 진통제의 복용 횟수나 복용량을 줄일 수 있다. 이 환자도 원인이 되는 다열근 세군대에 주사를 하니 통증을 거의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사람마다 치료의 효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어서 한 번에 치료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 시간 뒤 증상이 재발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가 될 때까지 믿고 반복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날 환자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진료를 위한 날짜를 잡으려고 하니 거의 통증을 느끼지 않아 아프면 가겠다고 한다. 일주일 뒤에 다시 연락을 하니 통증이 거의 없고 피부병변도 이제는 좋아져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한다. 앞으로 치료가 잘되길 기원한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종합병원 응급의학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일 할 때마다 어림잡아 2~3명 이상의 환자에게 신경조절주사를 한다. 의사로서 나의 인생은 신경조절주사치료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인생으로 나뉘는 것 같다.

인간의 몸은 약 650개 이상의 근육과 뇌, 척수로부터 기원하는 수많은 신경들이 있다. 골절, 척추 디스크 질환, 염증, 외상, 종양 등 수많은 원인으로 인해 인간은 다양한 통증과 기능 이상을 겪을 수 있다. 이것은 의사가 되기 위하여 교과서와 스승님으로부터 배운 것들이다. 하지만 치료적 한계에 부딪혀 불만족스러운 치료를 환자에게 제공해 온 경우가 종종 있어 왔다. 아파서 온 대상포진 환자에게 만족스럽지 못한 진통제 주사만 놔주거나, 몸의 일부가 아파서 온 환자에게 엑스레이를 찍고 큰 이상소견이 보이지 않아 원인을 모른 채 진통제만 처방하고 외래로 오라고 하기도 하였었다.

수년간 소화불량과 복통으로 고생하였지만 큰 병원에서 검사를 한 뒤 큰 문제가 보이지 않아 기능성 위장장애, 정신과적인 문제라는 말을 듣고 위장약을 복용하며 지내는 환자들이 응급실에 오게 되는 경우도 많은데 대부분 응급 검사를 시행하고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으면 통상적인 위장약을 투여하고 외래로 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년 간 두통으로 고생한 환자에게 머리 CT, MRI를 찍고 이상이 없어 진통제만 투여하고 계속 아프면 외래로 오라고 하는 등 그간 나는 환자에게 교과서적인 검사와 치료를 하고 의사의 의무를 다했다는 생각을 하고 그 후 환자들이 안고 가야할 고통은 외면한 채로 지냈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통증의 원인 이외에도 인체의 수많은 신경(운동신경, 감각신경, 자율신경)들은 그 주행과정에서 많은 근육과 구조물에 의하여 신경자극을 받고 이로 인해 통증과 기능이상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런 기전에 의한 통증은 영상 검사나 혈액검사에서 이상을 보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기전에 의한 통증과 기능이상이 바로 신경조절주사요법의 치료 대상이 된다.

해부학적 지식과 통증에 대한 통찰이 있다면 환자들의 통증과 기능 이상을 면밀히 살펴본 뒤 주범이 되는 근육과 신경을 찾아 치료할 수 있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듣고 원인이 될 근육과 신경의 경로를 손으로 꼼꼼히 누르다보면 치료점을 찾을 수 있다. 치료점을 찾은 뒤에는 그 근육에 포도당 수액을 약 4~5㏄ 주사하여 치료한다. 약물을 사용하지 않는 점과 신경이 아닌 근육에 주사를 놓음으로써 신경의 기능을 조절하는 것이 치료기전이므로 주사통증 말고는 부작용도 거의 없다.

환자와 증상에 따라 치료 효과는 즉시 또는 수 분에서 수 시간에 걸쳐서 나타난다. 위의 대상포진 환자처럼 한 번의 치료로 끝나는 경우도 있고 자율신경 실조증 환자처럼 37번의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중요한 건 의사의 경험, 컨피던스(정확한 지식과 수많은 환자 경험으로 쌓은 자신감) 그리고,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와 치료 순응도, 끈기이다. 급성기 통증은 금방 좋아질 수 있지만 오래된 통증일수록 치료기간 역시 장기전으로 갈 수 있다.

응급의학과 의사로서 응급실에서 본래의 일과 더불어 신경조절 주사를 한다는 것은 시간과 노력, 체력이 더 요구된다. 많은 환자들의 아픈 부위를 엄지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진찰하고 나면 며칠 간 엄지손가락의 관절통이 생긴다. 하지만 나는 신경조절주사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이고 환자의 고통을 더 잘 알고 치료할 수 있는 ‘제3의 눈과 손’이 있기에 내가 마주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다. 오늘도 나는 환자들의 아픈 곳을 엄지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가며 통증으로부터 해방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